🌈 : 다른 졸업생들의 추천으로 댓잎레터를 처음 마주하게 됐는데요. 졸업생들과 선생님들, 재학생들만의 자그마한 공방이 마련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정말 기뻤어요. 어떻게 댓잎레터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던 도중, 인터뷰이를 찾는다는 글을 보고 이때다 싶어 신청했죠! 

2014년 졸업한 이후, 9년간 많은 고생과 기쁨들이 있었어요. 한빛고 3년 동안엔 희귀병을 진단받아 병원을 내 집 드나듯이 했었고요, 영상제에 참여해서 다른 분들과 같이 상을 받는 등의 기쁨도 있었어요. 이랬던 고등학교 생활 이후 제 모습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시진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인터뷰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 : 고등학교 때 저는 대체로 매우 조용한 편이었어요. 지금 현재도 앓고있는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Bipolar Disorder) 때문이에요. 중학생 때 당했던 왕따 사건 등의 영향도 큰데요. 기분이 하루 이틀 길게는 몇달 가까이 질풍노도처럼 지나가서 친구들과 친해지기 힘들었고, 주변에 적응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당시(2010년도 초반) 선생님들도 이런 저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 많이 당황하셨던 모습도 봤던 것 같구요.

🌈 : 새집(nest)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설사 떨어지더라도 안락하고, 부모새의 보살핌이 따뜻하지만, 다른 형제자매들을 위해 마냥 짖궂을 수만도 없는 곳이요. 모닥불(Bonfire)이라는 단어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정상'의 범주를 찾고자 헤매는 불꽃들이 우리라면 그 길을 가이드해주시는 학부모, 선생님 등 모든분들이 그 모닥불의 주인이겠죠.

🎤 : 한빛고를 꼴찌로 졸업했지만 대학에서 전액장학금을 받으셨다고요! 원래 머리가 좋은 편이었지만 고등학교 때 공부를 하지 않았던 건가요..? 대학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 : 영향은 정말 다양했던 것 같아요.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가족들의 영향도 분명 있구요. 고등학교 때는 제가 가진 질병과 치료방법 등을 몰랐어요. 그래서 생긴 불안감도 많았구요. 대신, 밥 먹듯이 편입하고, 매번 제가 선택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되니 학업을 통해 저의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어요. 

사실 학교다닐 때, 대학입학은 별로 생각치 않고 있었어요. 일단 성적이 안되었을 뿐더러, 대학을 목표로 해야되는 이유를 설득당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반신반의 해요, 현대 사회에서는 대학졸업을 하나의 자격증처럼 만들어놓은 것 같아서요.

하지만, 대학에 가서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이 없진 않았어요. 사회성, 리더십,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을 배울 수 있었죠. 현재 다니고 있는 RMIT(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는 제가 가지고 있는 양극성 정동장애나 기타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서포트가 많이 열려있는 대학교에요. 성적과 제가 가진 질병의 연관성을 최대한 낮춰주죠. 예를 들면, 저 대신 수업을 들어줄 학생을 잠시 구할 수 있고, 과제 제출 날짜를 바꾼다든지, 이해가 안된 부분들에 대해 교수들이 자유롭게 교정해 주세요.

중요한 질문 주셨는데 딱히 대학에 와서 공부를 열심히 한 것 같진 않아요. 하게 된 공부들도 대부분 제가 ‘재미를 찾거나 공부를 하고싶다’ 하는 과목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덕분에 졸업 말에 듣고 싶지 않았던 과목들을 공부해야되긴 하지만요 ^^;; 

사실 현재 공부하고 있는 학교는 좋지만 학과에 만족하고 있지 않아요. 한국, 독일, 미국 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국내외 학교에서 공부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요. 현재 공부 중인 과목들은 모두 디지털 마케팅 관련 과목들인데요. 인턴으로 실습하는 동안에도 ‘마케팅’ 업무와 저의 커리어 철학이 맞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제 커리어 철학의 핵심은 ‘사람을 돕는 일’인데, 마케팅과 매치도가 높지 않은 것 같더라구요. 

지금까지 직업적 매력도가 가장 크게 느껴졌던 HR— 인사전략팀 (구글에서는 People Operations라고 불리운다) — 이에요. HR직무로 구글이나 외국계에 입사하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등 많은 가능성에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 : 흔히들 ‘(A가 어려울 경우를 대비하여) 계획 B, C를 먼저 생각해둬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지나고 들어보니 그 말은 이미 옛말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최근 경영학이나 소프트웨어, IT 기반 스타트업과 빅테크 회사에서 많이 쓰는 말이 있어요. ‘애자일(Agile)하게, 애자일(Agile)하다’ 한번쯤 들어보신 분들도 많이 계실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컴퓨터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매년, 매월, 매일 다루게 되는 업무가 달라지는 상황이 생기다보니 “빨리빨리”를 업무적인, 조금 더 과학적인 언어로 변화시킨 게 바로 애자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자일이란?: ‘날렵한’, 민첩한’이란 뜻인데요. 서비스를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받아 적용하는 과정을 짧은 주기로 반복하는 방식으로 추후에는 환경과 상황에 맞춰 빠르고 유연하게 일하는 방식으로 의미가 확장되었습니다. 즉, 조직을 애자일 하게 운영한다는 것은 조직의 경계를 허물고, 기존의 피라미드형 직급 체계에서 벗어나 필요에 의해 협업하는 자율적인 팀을 조직하고 팀 개개인의 오너십을 부여하는 수평적인 조직구조를 설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자일 조직은 불필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줄이면서 구체적인 계획보다는 바로 실행에 옮겨 외부 피드백을 계속적으로 반영해 최종 결과를 만드는 일의 방식을 추구합니다. (출처=시프티)

사회의 공식을 따르자면, 위에 말씀드렸다시피, 대학 여러 개를 다니면서 여러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수많은 삶의 경험들을 겪게 된 결과가 말씀드린 한 마디의 결론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굳이 한문장으로 꼽자면, ‘많은 경험과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자’ 정도가 되겠네요.

특히 수험생 입장에서 ‘나라는 사람’은 수능 등급, 학과, 적당한 기회 몇 번이 아니라 수억 개의 가능성이 뭉쳐진 ‘나’라는 거시적인 관점을 가졌던 것에서부터 여러 열매를 맺었던 것 같아요. 모니터의 ‘경쟁자의 수’ 보다 ‘나는 지금 어디 있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미래를 멀리 바라볼수록 한 계기들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요?

🌈 : 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인데요. 그만큼 대답을 많이 생각해 봤지만, 가장 가까웠던 답은 “천성”인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제가 왜 새로운 일을 이렇게까지나 좋아하는지 알아내지 못했거든요. 두 번째 답이라면, 머리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해야 하는… 좋게 말하자면 ‘결단력’인 거고 다른말로 하자면 ‘성급함’이겠죠?, ‘해야 하나? 할까 말까?’ 망설이면 그 매 순간들이 진입장벽이 되어버리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의 수가 많아질 것 같아요.

🌈 : 저는 ‘계기가 있는 일’을 ‘꽂히는대로’ 하는 편인 것 같아요 ㅎㅎ 시간과 때와 장소가 있듯이 계기가 뚜렷한 일이 항상 내 눈에 들어와있으란 법이 없거든요. 하지만 ‘다양한 일들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라는 사고관을 가지면 눈 안에 없는 기회가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 : 지칠 때는 또 시간이 답인 것 같아요. 저는 잠자는 걸 좋아해서 낮잠을 많이 잡니다ㅎㅎ(구글에 있는 낮잠 공간이 개인적으로는 정말 좋았어요). 중-장기적으로는 하고 싶은 일/잘하는 일과 하기 싫은 일/못하는 일을 적절히 전략적으로 섞어서 배치하면 지칠 시간이 없이 일을 진행할 수가 있어요. 

맞다, 뜬금포(Impromptu) 여행은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위한 서프라이즈…? 저 같은 경우엔 저저번 주에 계획도 없었던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비슷하게 국내여행을 다녀와도 되고 가본적 없는 주변 동네를 조금만 더 넓게 둘러다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

🌈 : 구글에 와서부터인가 주변에 책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라구요. 제 개인사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많구요. 그래서 요즘 들어 ‘읽고 쓰는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2024년 초를 기점으로 저와 제 생각을 담은 책을 한번 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바쁘게 살아가다 지칠 때는 역시 영화관, 뮤지컬, 페스티벌입니다! 하지만 10년을 국내 도서산간, 국외에서 지내다 보니 서울 문화에 젖으려 드는 게 쉽지만은 않을 따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