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빛 초기부터 함께했던 선생님들 인터뷰에서도 드렸던 질문인데요, 이번에는 1기 학생이 경험했고 기억하는 당시 한빛 일과는 어땠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보통 어떻게 하루를 보내셨나요? 혹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그때 당시 인문계에서 행해졌던 0교시를 폐지하고 24시간 도서관을 개방해서 자율적으로 공부하는 문화를 강조했었는데 저는 자율과 그에 따르는 책임을 미룬 채 친구들과 혼신의 힘을 다해 놀았던 거 같아요. 정말 대책 없이 놀았습니다.

서울에 살던 도시 청년이 텃밭이라는 과목으로 농작물을 재배하고, 5.18 민주 항쟁을 접하고, 또래의 친구들과 다 같이 산과 바다를 다닐 수 있었던 그 자체가 한빛이라는 곳의 특별함을 보여준 듯해요.

이외 수학여행으로 반별로 테마를 정해 갔는데, 3학년 때에는 이강석 선생님과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갔어요. 한빛 외에는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 아닐까 싶습니다.

🎤: 1기는 기숙사가 없어서 근처 수련원에서 통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했습니다. 정말로 졸업하실 때까지 수련원에서 통학하셨나요? 그 밖에도 학교가 처음 생겨서 일어난 해프닝 등이 궁금합니다!

🫡: 1년을 성암 야영장에서 45인승 버스 2대로 통학을 했습니다. 2학년 때에는 지금의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고요.

기숙사가 야영장이다 보니 많은 학교에서 여행을 왔습니다. 아무래도 이성에 관심이 많은 시기다 보니 춤 잘 추는 친구를 밀어 넣어 공연을 하기도 하고, 숙소에 찾아가 만남을 하다가 걸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일로 군대보다 먼저 목봉 체조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목봉 체조는 군대에서 유격 PT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 한빛 시절의 상근님은 어떤 학생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 고등학생에게 개구쟁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엄청나게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법적으로 문제 되는 정도는 아니었다는 정도만 말씀드릴게요.

에피소드를 몇 개 말씀드리면 선생님께서 한 번만 더 잘못을 하면 서로 종아리를 때리자라며 강력한 메시지를 제게 보내셨으나, 저는 결국 선생님의 종아리를 때리게 되었습니다. 졸업생 중 선생님의 종아리를 서로 때려 본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한번은 반장(실장) 선거를 했는데 나름 투표로 제가 당선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 당황하셨는지 하신 말씀이 “반장선거는 장난으로 뽑는 것이 아니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외 어느 날 선생님들께서 20여 명을 벌의 명목으로 집에 못 가게 외출 외박을 통제한 적이 있었어요. 저희 친구들은 벌을 받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자체 체육대회를 열어서 어느 때보다 더 즐겁게 1박 2일을 보낸 경험이 있답니다. 이 경험은 지금도 큰 추억으로 남아 있고요.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친구를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순수한(?) 학생이었습니다. 공부 외에 한빛고에서 일어나는 일은 누구보다 앞장섰던 거 같습니다. 제 고등학교 시절의 소개는 에피소드들로 갈음할게요. 그러고 보니 한빛고등학교에서 유도부로 2년 넘게 유도도 배운 적이 있네요. 후배들도 있는 거 보니 99년 혹은 2000년으로 보입니다.

직업군인의 삶

🎤: 무언가 막연하게 한빛에서의 삶과 군에서의 삶이 반대 지점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직업군인은 어떻게 결심하게 되셨나요?

🫡: 제가 군 생활 21년 차인데 물 흐르듯 온 거 같아요. 그렇다고 솔직히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아요.

입대를 했을 당시 부친께서 암 선고를 받으셨어요. 어머니께서는 평생 주부로만 사셨었고, 어린 마음에 돈을 벌 수 있는 게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군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렇게 의무 복무만 하려 했는데 때마침 부친께서 유언으로 군 생활을 계속하라는 말씀에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지금까지 군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께 제게 왜 이런 짐을 주셨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평범하게는 살게 해주신 거 같아요.

🎤: 한빛에서는 가끔 세상과 거꾸로, 반대로 생각하길 가르치기도 하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의심하기도 하는데요. 무엇보다 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는 ‘군대'라는 조직에 어떻게 적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한빛에서의 가르침 때문인지 제 성격인지 모르겠는데 군 조직이 답답하고 폐쇄적인 집단이라고 느끼고 살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조직에 대한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 같고요. 청개구리처럼 불평불만이 많고 조직에 반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한빛의 공동체 생활이 많은 도움이 된 듯해요. 단체 생활을 통해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다름을 존중하는데 내면 깊숙이 자리 잡게 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이렇게 조직에서 긴 생활 동안 근무하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 ‘군인’을 직업으로 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 하지 마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굳이 꼭 하셔야겠다면 흠..

요즘 MZ 세대들은 군이라는 폐쇄적인 집단에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조금만 노력하면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국외로 교육을 다녀올 수 있다든지, 학위를 따는 데 있어 전폭적인 지원이 된다든지 말이죠.

요즘 세대들이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하잖아요. 인플레이션에 절약 – 저축 – 투자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서 부모님의 도움 없이 독립하기가 쉬운 세상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군은 스스로 본인이 노력하면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은 되는 듯해요. 그리고 위에 언급한 것처럼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것들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도 열려 있습니다.

그래도 하지 마셔요.

삶의 키워드는 행복

🎤: 요즘 상근님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개인적으로 제 삶의 키워드는 행복입니다. 가족과 함께 소소한 즐거움을 찾고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현재도 어린 두 자녀와 함께 보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가장 행복한 거 같아요. 어린 자녀들과 함께 있으면 정말 기상천외한 일들이 많이 생기거든요.

보통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시기는 연령대가 언제일까요? 이론적으로 60대라고 합니다. 제가 양가 부모님에게 물어봤는데 진짜 60대 현재가 제일 행복하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40대 초반인데 8세 6세 두 딸을 키우는 양육자로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데 60이 안된 만큼 제게는 행복한 삶만이 기다리는 것 같아 설레며 기대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한편으로는 과오를 범하지 않으려 애쓰기도 한답니다. 보통 3040기혼자들이 10년 뒤에 가장 후회하는 일이 크게 두 가지라고 하는데요.

1. 자녀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낼 걸

2. 부모님을 좀 더 찾아뵙고 인사드릴 걸 이라고 합니다.

어느 책에서는 20살 성인을 기준으로 독립하면 부모님과의 시간을 93% 썼다고 합니다. 저도 자녀와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어머니에게 자연스레 소홀해짐을 느꼈는데 위 두 가지를 후회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찾으려 부단히 노력 중이랍니다.

🎤: 한빛 재학 시절 선생님들께서 초기 기수들과는 ‘이제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습니다. 졸업생들 중 누구보다도 (초창기 멤버인) 선생님들을 오래 알고 지낸 지금 상근님께 한빛 선생님들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요?

🫡: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동반자입니다.

1학년 입학했을 때 남자 사감 선생님이 배수홍 교장 선생님과 최종재 선생님이었어요. 여자 사감 선생님은 정혜영 선생님이셨고요. 이밖에 많은 선생님이 계시죠.

그냥 한마디로 오랜 벗 같아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오랜만에 보면 반갑고, 그냥 웃을 수 있고 즐거움을 추억하는 사이니까요. 다른 느낌으로는 전우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한빛이라는 공동체가 지금까지 쭉 이어온 데에는 초창기 좌충우돌을 겪고 이겨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