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 작업도 진행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떤 공간을 맡으시는지 궁금해요.

🍃: 공간 디자인 및 설계, 제작, 시공을 하는 스튜디오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전시 공간이나 상업 공간에 들어가는 것들을 만듭니다. PaTI를 다니던 시절 학교 행사 준비나 종종 있는 제작이나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이쪽 분야에 관심이 생겨 발을 들였어요.

가장 최근에 진행했던 작업은 올해 PaTI를 졸업하는 친구의 졸업 전시용 서랍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102개의 4절지 사이즈 작업물이 들어가야 했는데 일반 서랍으로 만들어지면 예쁜 작업물이 가려지는 게 아쉬워서 전체 구조에서부터 작업물이 절반 정도 보이고, 양방향으로 열릴 수 있게 풀어서 만들었습니다. 같은 형식이 많이 반복되는 구조이다 보니 설계할 때 어느 한 부분이라도 실수하면 크게 깨지는 작업이라 긴장감을 가지고 수없이 확인했던 것 같아요. 실제 전시 때 의도한 대로 잘 쓰여서 다행이었어요.

🎤: 무려 결혼식을 준비하는 작업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 알고 지내던 PaTI 더배곳 졸업생 분이 개인적으로 본인 결혼식 공간 연출을 의뢰해 주었는데 내가 언제 누군가의 결혼식을 꾸며볼 수 있을까 싶어서 한다고 했어요. 늘 저와 같이 일을 하는 친구(J)와 시작하다 집기 및 오브제 제작 기획 단계부터 전시장에서 일을 하는 친구(B)도 합류해서 준비했어요.

우선 대관한 공간이 결혼식을 위한 공간은 아니어서 조명부터 손을 봤어요. 신랑, 신부의 동선을 고려하고 시간대에 걸맞은 조명색을 골라 설치했어요. 그리고 하객들이 앉을 동그란 테이블에 올라가는 촛대와 초, 진행 스탭용 유니폼, 사회자를 위한 단, 보면대, 화촉점화용 촛대 등 만들 수 있는 건 다 기획하고 만들었어요. 니즈에 맞는 기성품은 예산에 맞지 않아서 오히려 직접 만드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지만 역시나 단 하나도 쉽게 나온 건 없었답니다. 떨어지는 촛농이 예쁘려면 담금초여야 하고 하객 입장부터 식사 전까지 촛불이 켜져 있으려면 긴 기장에 도톰해야 했는데 하루 종일 200개 정도 되는 걸 만들었더니 친구 집이 촛가루와 촛농으로 엉망이 되기도 했어요.

꽃은 마침 J의 친척분 중에 부케 사업을 하는 분이 계셔서 규모를 말씀드리고 전체 꽃으로 섭외하고, 진행 스탭은 당연하게도 PaTI 친구들로 하나둘 모았는데 다들 학교 행사 경험이 많았던지라 우수한 위기 대처 능력과 '짬바'로 현장 진행을 맡아주었답니다. 하물며 식순의 디테일은 현장에서 리허설하며 스탭 친구들의 도움으로 완성되었어요. 꾸며진 공간에 어울리는 BGM도 영화를 만드는 친구가 맡아주어 더 다채로워졌어요.

의뢰인이 평생 남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을 용기 내 믿고 맡겨준 덕분에, 그리고 친구들의 능력치와 합 덕분에 무탈하게 진행되었어요. 신랑 신부 모두 좋아해 주어서 생각하면 기분 좋은 프로젝트 중에 하나에요.

PaTI : Paju Typography Institute

🎤: 주영님이 다니신 'PaTI'라는 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한빛고에 다니다보면 한번쯤은 듣게 되는 이름인데, 전공자가 아니면 잘 알고 있지는 않은 듯 합니다. 주영님이 PaTI를 알게 된 계기와 진학하게 된 이유, 그리고 전공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 진학하게 된 이유를 먼저 말씀드려보자면, 제가 2학년까지 느꼈던 한빛고는 대학을 꼭 안 가도 된다는 분위기였는데 3학년 때 갑자기 다들 수능을 준비해서 당황스러웠어요. 그래서 저도 급하게 대학을 준비하려는데 막막하더라고요. 4년 동안 다닐 학과를 정해야 한다는 게 직업을 당장 정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부담스러웠거든요. 성적도 의지도 딸려서 그냥 하고 싶은 걸 했어요. 괜히 굴러다니던 고사성어 책을 꺼내서 한자 적는 연습을 한다던가. 붓펜으로 친구들 팔뚝에 그림을 그린다던가. 불안하기도 했지만, 한자 공부도 붓펜 그림도 열심히 해서 그걸로 불안감을 덜어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예전에 엄마가 알려준 PaTI가 생각이 났어요. 대안 교육에 관심 있는 엄마의 정보력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그때는 PaTI 사이트에도 정보가 많이 없어서 직접 가서 확인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한빛고에서 대학 탐방이라는 기간을 주었을 때 다녀와 보았는데 웬 공사 현장 같은 날 건물에 다양한 고가구들로 채워진 모습이 인상 깊더라고요. 보고 느낀 건 그뿐이었어요. 사실 어떤 학교인지 잘 모르겠고 파악이 안 되는 지점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전공이 없는 것도 좋았고요. 그래서 아리송하지만, 무궁무진할 것 같은 느낌에 이끌려 입학을 결심했어요.

PaTI는 각종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학교입니다. 전공이 없어서 PaTI를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공이라 할 만한 본인의 주특기가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배우고 움직일 의지, 표현할 의지만 있으면 재밌게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5.5기

🎤: 주영님은 한빛고에 다닐 때 휴학을 하신 경험이 있으신데요, 고등학교 휴학은 어땠나요? 다른 고등학교에서는 드문 휴학이지만 한빛고에서는 매 기수마다 몇 명씩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휴학했던 친구들에게 늘 궁금했던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어떤 일들을 하며 1년을 보냈는지, 돌아왔을 때 다른 기수와 같은 학년으로 학교를 다니는 건 어땠는지 궁금해요.

🍃: 한빛고에서의 휴학은 대학교 휴학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요. 그냥 한번 경험해 보고싶기도 하고, 고등학생 시기가 3년 밖에 없다는 게 아쉽기도 해서 2학년 2학기 때 1년 휴학을 신청했어요.

그때 캐나다에서 3개월 정도 다른 고등학교 생활도 잠깐 해보고, 다른 학교 친구랑 짧은 연애도 해봤어요. 외동에 부모님도 맞벌이하셔서 혼자 놀고 생각할 시간이 많았는데 고민 많은 10대가 얻은 적당한 시기의 여유였던 것 같아요. 같이 입학했던 기수 친구들을 좋아해서 처음엔 다른 기수와 같이 지내는 게 걱정도 되었었는데 다들 편하게 받아줘서 고마웠어요. 또 같이 휴학하고 복학한 친구들이 4명이나 더 있어서 나름 즐겁게 지냈어요.

🎤: 한빛에서의 생활은 주영님에게 어떤 시간으로 남아있나요?

🍃: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친구들이랑 함께할 수 있어서 재밌고 신나기도 했지만, 또 여느 또래처럼 고민이 많던 시기여서 종종 고군분투하며 침전된 시간을 보내던 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나가며

🎤: 요새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 저의 집입니다. 최근에 이사했어요. 자취를 시작한 지는 꽤 되었는데 본격적으로 공간 관련 일을 하고 난 이후 첫 이사라 그런지 저의 생활 패턴에 맞춘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더라고요. 아직은 끄적거리면서 레퍼런스만 잔뜩 모아놓았지만, 집에 들어갈 다양한 집기들을 구상하고 있어요.

🎤: 주영님이 삶의 '모토'로 가지고 있는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요.

🍃: ‘책임’입니다. 내가 하겠다고 한 일이라면 어떻게든 책임지고 완수하는 것, 큰 부담을 느끼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주영님의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 한동안은 어느 일이든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는데, 그렇게 욕심을 많이 부렸더니 주변 사람들에게 염치가 없어지거나 신세를 지는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최근 들어는 나의 역량을 파악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임무를 떳떳하게 완수하기가 앞으로의 계획이자 목표입니다!